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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화장터에서

@Starless

네팔 카트만두계곡에서의 어느 오후, 퍼슈퍼티나트(Pashupatinath) 사원에 들렀다.

 

퍼슈퍼티나트에는 네팔에서 가장 큰 화장터가 있다. 네팔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힌두 풍습에 따라 한 시간 내로 화장터로 옮겨진다. 단 위에 장작을 쌓고 시신을 올린 뒤, 기름과 꽃을 뿌리는 짧은 의식을 뒤로 한 채 순식간에 재로 돌아간다.

 

인도 바라나시와 차이점이라면, 출입이 비교적 자유롭고 사진 촬영이 허가된다는 점이다. 가까이에서 촬영을 해도 제지하지 않는다. 그런데 좀처럼 셔터를 누를 마음이 들지 않는다. 당연한 얘기겠다. 죽음의 장면은 마주하기 쉽지 않다.

 

@Starless

역시나 쉽게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너무도 이질적인 풍경 - 고인을 기리는 행사는 기껏해야 십여 분, 웃으며 보내주는 가족들, 기름과 장작을 흥정하는 장사꾼, 시체가 잘 타도록 뒤집어주는 일꾼, 큰 장대로 뼈를 부서뜨리던 사람, 타는 시체에서 튕겨나온 뼈마디를 불속으로 던져주던 행인, 어슬렁 소 한 마리가 들여다보고 원숭이들이 뛰어다니던, 태운 시체를 강물에 버리면 물에 잘 풀리도록 저어주던 소년, 금붙이를 찾아 시체 더미를 뒤지고 다니던 꼬맹이들까지 - 그 풍경이 주는 페이소스가 너무 강렬해서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사진을 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진적 행위는 끊임없이 부재를 떠올리고, 죽음은 부재를 발현하는 가장 흔한 조건이다. 그래서, 문득 퍼슈퍼티나트에 가고 싶어진다. 다시 간다면 조금 독하게 셔터를 누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셔터를 누르던, 그저 바라보던, 새삼스레 명상을 하던 아무래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곳이라면, 무엇을 해도 조금 더 죽음과 부재에 가까이 가게 될테니.

 

언젠가 이런 얘기를 했을 때, 한 분이 남겨주신 말씀이 기억난다.

 

"시체 태운 재를 강물에 버린다니 그 물 참 더러워서 구경하다 절대 빠지면 안되겠다 싶기도 하고, 우리네처럼 3일, 5일씩 질질 끌지 않고 시체를 바로바로 태워버린다니 이승에 대한 미련을 갖지 말라는 의미인가도 싶고.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겠죠. 가야할 곳은 한 곳이지만."

 

'가야할 곳'이라는 화두가 무겁게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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