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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평양냉면

8년 전, 네팔 카트만두의 북한 음식점 – 옥류관에 갔었다. 실제 북한 사람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고, 북한 음식은 생소한 터라 긴장도 했었는데, 작은 무대도 있고 시간대별로 공연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 동행한 분들이 이것저것 주문해서 맛을 보게 되었는데, 평양냉면이라고 가져다 준 걸 보니 모양은 비슷한데 어딘가 좀 낯설었다.

 

@KBS

접대원 동무가 먹기 좋게 해준다며 냉면을 손질해주는데, 면을 젓가락으로 높이 들어 어슷자르고 사이사이에 식초를 듬뿍 쳐주는 거였다. 우리가 흔히 냉면을 먹는 방식과는 달랐다. 한젓가락 입에 넣어보니 맛 또한 제법 달랐다. 면은 오히려 미끌거렸고, 육수는 우리의 평양냉면보다 더 슴슴했다. 식초를 잔뜩 넣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맹물에 면을 담근 수준이었다. (참고로, 내 입맛은 을지면옥, 필동면옥, 을밀대, 부원면옥, 유진식당, 의정부평양면옥 등에서 단련된 입맛이다.) 그 외에도 어복쟁반, 온반 등 여러가지 음식을 먹었는데 대부분 맛이 달랐던 기억이다. 덕분에 우리나라 식당들에 배신감도 좀 느꼈었다.

 

식당에서의 또 다른 기억은 접대원 동무한테 구박당한 기억인데, 이를테면, 냉면을 주문하면 “랭면맛이나 알고 먹습네까?”, 명태식해를 먹으며 “남한에서는 가자미식해를 먹습니다” 했다가 “맛대가리 없는 생선으로 식해를 해먹습네까?” 와 같은 장면이다. 그 중 하일라이트는 벽에 붙어있던 메뉴를 구경하다가 ‘들쭉술’ 밑에 ‘조국산’이라고 써붙여놓은 걸 보고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가 들은 대답이다. 접대원 동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동무는 조국도 없습네까?”라는데,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니, “조국에서 왔으니 조국산이지요.”라고 덧붙이는 거였다. 어쩐지 이 장면에서는 조금 덜컥하는 기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 좀 다르구나.

 

그 다음해에는 캄보디아 씨엠립의 평양랭면관에 갔었는데, 메뉴도 음식맛도 카트만두의 옥류관과는 좀 달라서 (캄보디아 쪽은 규모도 훨씬 크고, 본격적으로 한국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곳이라 메뉴에 떡볶이까지 있다.) 접대원 동무에게 “작년에 네팔에서 갔을때와는 많이 다르다”고 했다가 또 한바탕 구박을 당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동무 꽤 유명한 동무라 여기저기 얼굴이 팔린 사람이었는데, 더 혼나는게 무서워 후다닥 그릇을 비웠던 기억이 난다. 그게 벌써 7년 전이니, (북한식)평양냉면을 먹어본 게 꽤나 오래된 셈이겠다.

 

김정은위원장의 냉면 농담을 듣고 있으니, 그저, 많은 것은 바라지 않으니, 평양에 평양냉면을 먹으러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든다. 가능하다면 비자 같은 것 없이 차를 운전해서 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생각이 든다. 30년간 신세져 온 을지면옥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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