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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아이들
난생 처음 떠난 외국이 네팔이었다. 벌써 10여 년 전,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모집한 자원봉사단에 참여하면서다. 목적지는 카트만두 남쪽의 버디켈로, 카스트 계급상 최하위에 속하는 빠하리족의 거주구역이었다. 굿네이버스는 이 지역에 호스텔과 학교를 세웠고, 70여 명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총 13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이곳에서 영어, 미술, 체육 교육을 진행했고, 영어도서관도 세웠다. 어쩌면 삶의 목표까지 바꾸게 된, 강렬했던 일주일의 기록이다. 한국으로부터 6시간의 비행 후,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한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버디켈은 작은 산골마을이었다. 낯설고 조금 어색해서 호스텔 입구에 서있는데, 동네 장난꾸러기 녀석들이 장난을 걸어왔다. 호스텔의 아이들은 고아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편모 슬하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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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콧의 아침
네팔 포카라 인근의 사랑콧(Sarangkot)은 일출로 알려진 곳이다. 미니 트레킹 또는 차량으로 올라가면, 하늘에 떠 있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사이로 해를 볼 수 있다. 그 풍경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접근이 편리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했다. 포카라에서의 둘째 날, 카트만두에서 알게 돼 동행이 된 분들과 새벽 사랑콧에 올랐다. 전날 약속한 택시기사를 만나 4시경 출발하니, 캄캄한 언덕 위에 도착했을 때 멀리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장면을 실제로 보는데, 머리속으로 상상하던 규모가 아니라, 말문이 막혀버렸다. 셔터를 누르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제프 버클리가 들려왔다. 근처에 앉아 있던 누군가의 흥얼거림이었을 수도, 가게에서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였을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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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터에서
네팔 카트만두계곡에서의 어느 오후, 퍼슈퍼티나트(Pashupatinath) 사원에 들렀다. 퍼슈퍼티나트에는 네팔에서 가장 큰 화장터가 있다. 네팔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힌두 풍습에 따라 한 시간 내로 화장터로 옮겨진다. 단 위에 장작을 쌓고 시신을 올린 뒤, 기름과 꽃을 뿌리는 짧은 의식을 뒤로 한 채 순식간에 재로 돌아간다. 인도 바라나시와 차이점이라면, 출입이 비교적 자유롭고 사진 촬영이 허가된다는 점이다. 가까이에서 촬영을 해도 제지하지 않는다. 그런데 좀처럼 셔터를 누를 마음이 들지 않는다. 당연한 얘기겠다. 죽음의 장면은 마주하기 쉽지 않다. 역시나 쉽게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너무도 이질적인 풍경 - 고인을 기리는 행사는 기껏해야 십여 분, 웃으며 보내주는 가족들, 기름과 장작을 흥정하는 장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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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땅으로
미얀마의 별칭은 ‘인연의 땅’이다. 국민 절대 다수가 불자인 미얀마는, 인연을 소중히 하고 베풀며 살아가는 곳으로 알려져있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인연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미얀마 여행을 처음 생각한 것은 2015년이었다. 이직을 앞둔 시점에 여행으로 머리를 비우고 싶다는 핑계는 꽤 설득력있었고, 잘 알려지지 않은 미얀마는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외국 사이트와 낡은 책자를 뒤적여(국내에는 아직 정보가 많지 않다) 일정을 준비하고 항공권과 숙박까지 어렵사리 예약했는데, 출발 직전 미얀마에 큰 홍수가 났다. 가도 될까, 수만채의 집이 무너지고 수백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곳에 여행자로 발을 디뎌도 될까 고민하다, 결국 환불이 되지 않는 항공권과 숙박을 깨끗이 포기하고 인연이 아닌가보다 생각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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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베인의 다리
1851년 미얀마 아마라푸라의 시장이었던 우베인은 타웅타만호수에 1.2km 길이의 다리를 놓았다. 이후 '우베인다리'라 이름 붙여진 이 다리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티크나무다리이자 미얀마인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곳이 되었다. 만달레이에 도착한 날 오후, 우베인다리를 건너 아마라푸라로 산책을 다녀왔다. 타웅타만 호수에서 바라보는 우베인다리의 일몰이 무척 유명하더니, 호숫가에는 형형색색의 배들이 일몰을 보라고 호객하고 있었다. 제법 두꺼운 다리 기둥에 숨어 열대의 태양을 피하던 사람들 타웅타만호수는 그다지 깊지 않은지, 호수 가운데에서 집(?)을 짓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용도의 건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리를 걸어 호수 한가운데까지 나아갔을 때다. 커다란 나무 아래 걸터 앉아 쉰다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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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두 번째 높은 다리
곡테익 철교(Gokteik Viaduct)는 1899년 세워진,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철교다. 곡테익 협곡을 가로질러 만달레이와 라쇼를 연결하며, 길이 689m, 높이 102m의 위용을 자랑한다. 미얀마 여행을 준비하며 꼭 가보고 싶었지만, 사실 출발 전날까지 갈까말까 고민했던 곳이다. 도무지 돌아오는 차편을 확인할 수 없어서다. 짜욱메까지 가서 지나가는 버스를 잡으라던가, 라쇼에서 택시를 타고 피우린으로 가라던가, 나웅펭에서 돌아오는 기차를 타면 된다던가 얘기만 무성하고 확실한 것은 없었다. 12 Go Asia에서는 편도 기차편만을 판매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엉뚱한 곳에서 노숙을 한다던지 만달레이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한참 고민하다가, 이 기회가 아니면 영영 못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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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롱을 팔던 아주머니
발리 스미냑 해변에서 화려한 색과 문양으로 장식된 사롱(Sarong)을 파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곁에 다가와서는 이거 필요하지 않아? 한개 원헌드레드앤핍프티야. 두개 사면 투헌드레드앤핍프티야. 흥정을 건다. 해변에 올 때 비치타월을 가져왔기 때문에 살 생각이 없었다. 위니드나띵 벗 땡스포애스킹. 고개를 흔드니, 아주머니는 미소지으며 오케이.손을 흔드신다. 손을 흔들고 걷다보니, 그래도 하나쯤은 좋지 않을까 싶어 되돌아갔다. 맘, 위씽크위니드원. 반가운 표정의 아주머니는 다시 흥정을 건다. 기왕이면 두개 사. 저기 가면 좀 더 다양한 색상이 있어. 행상이 있는 곳으로 따라가보니 여러 가지를 보여주시는데, 아주머니의 어깨에 걸쳐 있던, 처음의 것이 가장 맘에 들었다. 이걸로 할게요. 아주머니는 기어이 두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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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택시
두번째 교토(京都)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던 길이다. 아침 일찍 호텔을 나와 택시를 탔는데, 우리 얘기를 들으시던 노(老)기사님이 반갑게 말을 건네오셨다. 교포 2세고 창녕이 고향인데, 일본에서만 지내다보니 한국말을 거의 잊게 되었다면서 띄엄띄엄 한국말과 일본어를 섞어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덥지 않냐고 물으시길래 괜찮아요 말씀드리니, 괜찮아요, 괜찮아요 되뇌이시며 일본어에는 그런 표현이 없다고 하신다. 한국말을 들으면 이해는 하는데 말이 바로 안나온다고 하시면서, 가라앉은 배 - 아마도 세월호겠지요 - 얘기도 하시고, 대통령이 오사카에 온다고 해서 직접 보러 가셨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리고, 아무래도 귀화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그래서 귀화를 많이 하는데 아내도 자식 둘도 귀화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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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um's
110 Jupiter St. Bel-Air Makati City Tel. 895-4636, 890-1054 Open from 5:30pm to 2:30pm, Monday to Sunday Strum's은 마닐라의 '진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클럽이다. 늦은밤이면, 가게 앞에서 꽃 파는 아주머니를 마주치게 될거다. 장미 한 송이를 건네며, 유어 파인 레이디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어, 라고 말할거다.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미리 준비했다잖아? 세 번 쯤 마주치면 꽃 대신 미소를 건네며 "오늘은 늦었네?"라고 말을 걸어올거다. 그럼, 오늘은 어떤 하루였는지, 그 날의 일들을 시시콜콜하게 얘기하게 될거다. 아주머니 옆에는 나무 상자를 끈으로 목에 걸고 가치담배를 파는 아저씨가 있을 거다. 담배를 고르면 불을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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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봄밤
나 죽으면 부조돈 오마넌은 내야 도ㅑ 형, 요새 삼마넌짜리도 많 던데 그래두 나한테는 형은 오마넌은 내야 도ㅑ 알았지 하고 노가다 이아무개(47세)가 수화기 너머에서 홍시 냄새로 출렁거리는 봄밤이다. 어이, 이거 풀빵이여 풀빵 따끈할 때 먹어야 되는디, 시인 박아 무개(47세)가 화통 삶는 소리를 지르며 점잖은 식장 복판까지 쳐들 어와 비닐 봉다리를 쥐어주고는 우리 뽀뽀나 하자고, 뽀뽀를 한번 하자고 꺼멓게 술에 탄 얼굴을 들이대는 봄밤이다 좌간 우리는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해야여 자슥들아 하며 용봉탕 집 장 사장(51세)이 일단 애국가부터 불러제끼자, 하이고 우리집 서 이렇게 훌륭한 노래 들어보기는 츰이네유 해싸며 푼수 주모 (50)가 빈자리 남은 술까지 들고 와 연신 부어대는 봄밤이다. 십이마넌인데 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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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파고다
여행을 떠나면 유독 종교시설에 집착한다. 교토에 가면 꼭 료안지에 들러야 한다. 마닐라에서는 주말마다 에르미타교회를 기웃거리다가 동료로부터 잔소리를 들었다(에르미타교회는 악명 높은 우범지대의 한가운데에 있다.) 포르투에서는 성당에 정신이 팔려 옆길로 새기 일쑤였고, 체스키 크룸로프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미사에 갔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성당이란 성당은 다 찾아다녔고, 박타푸르와 우붓에서는 새벽부터 힌두사원에 앉아 있었다. 그래도 중국에서는 안갔었네 생각하다보니, 그럼 그렇지, 예원을 세바퀴 쯤 돌았었다. 종교시설에 집착하는 것은, 신을 모신 곳이야말로 사람들의 맨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서다. 여러 사원에서 본 사람들의 표정은 순수 그 자체였고, 그 절실함이 전해져오는 것 같아 눈시울이 뜨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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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지는데 필요한 시간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아침 여섯시. 한국에서의 기상시간보다 삼십분 빠르지만, 시차를 생각하면 두시간을 더 잔 셈이었다. 다행히 머리는 가벼웠다. 간밤에 여기저기 늘어놓은 짐들로 방은 좁아보였다. 이건 캡슐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고개를 저으며 샤워를 하러 갔다. 건물만큼 낡은 총 여섯개의 샤워실과 화장실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샤워실 문의 잠금장치는 헛돌았고 뚫린 천장을 통해 화장실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샤워실에서는 내가, 화장실에서는 누군가가 각자 열중하고 있었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어제밤에는 몰랐는데 방의 잠금장치도 허술했다. 미닫이문은 잠궈도 세게 당기면 힘없이 열렸다. 이래서야 짐을 다 들고 다녀야 하잖아, 무거운 장비는 두고 다니려고 독실을 선택한 건데, 한숨을 쉬다 마지막 주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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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의 밤
늦은 밤 양곤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카트만두보다는 크고, 마닐라보다는 작은 규모의 국제공항. 사전에 비자를 준비해야 한다던 정보와 달리 공항에서는 도착비자를 허용하고 있었다. 허탈해하면서 짐을 찾았다(급행비자를 받느라 상당한 추가 비용을 냈었다.) 택시 바가지가 심하니 흥정하지 말고 공항택시를 이용하라, 유심은 MPT다, 환전은 공항에서, 혼잣말로 되뇌며 입국장 게이트를 걸어나갔다. 택시?라고 물어보는 살집 좋은 기사를 미소로 물리치고 환전샵으로 걸어갔다. 1달러에 1,520짯. 적당한 환율일까 생각하며 유심스토어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닫았어. 그래? 그럼 택시데스크는? 닫았어. 그렇군. 옆에서 웃고 있는 살집 좋은 기사를 애써 외면하고 공항 안을 헤매봤지만 열린 곳은 없었다. 한숨을 쉬고, 결국 그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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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땅으로
미얀마의 별칭은 ‘인연의 땅’이다. 국민 절대 다수가 불자인 미얀마는, 인연을 소중히 하고 베풀며 살아가는 곳으로 알려져있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인연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미얀마 여행을 처음 생각한 것은 2015년이었다. 이직을 앞둔 시점에 여행으로 머리를 비우고 싶다는 핑계는 꽤 설득력있었고, 잘 알려지지 않은 미얀마는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외국 사이트와 낡은 책자를 뒤적여(국내에는 아직 정보가 많지 않다) 일정을 준비하고 항공권과 숙박까지 어렵사리 예약했는데, 출발 직전 미얀마에 큰 홍수가 났다. 가도 될까, 수만채의 집이 무너지고 수백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곳에 여행자로 발을 디뎌도 될까 고민하다, 결국 환불이 되지 않는 항공권과 숙박을 깨끗이 포기하고 인연이 아닌가보다 생각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