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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나 죽으면 부조돈 오마넌은 내야 도ㅑ 형, 요새 삼마넌짜리도 많 던데 그래두 나한테는 형은 오마넌은 내야 도ㅑ 알았지 하고 노가다 이아무개(47세)가 수화기 너머에서 홍시 냄새로 출렁거리는 봄밤이다. 어이, 이거 풀빵이여 풀빵 따끈할 때 먹어야 되는디, 시인 박아 무개(47세)가 화통 삶는 소리를 지르며 점잖은 식장 복판까지 쳐들 어와 비닐 봉다리를 쥐어주고는 우리 뽀뽀나 하자고, 뽀뽀를 한번 하자고 꺼멓게 술에 탄 얼굴을 들이대는 봄밤이다 좌간 우리는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해야여 자슥들아 하며 용봉탕 집 장 사장(51세)이 일단 애국가부터 불러제끼자, 하이고 우리집 서 이렇게 훌륭한 노래 들어보기는 츰이네유 해싸며 푼수 주모 (50)가 빈자리 남은 술까지 들고 와 연신 부어대는 봄밤이다. 십이마넌인데 십..
첫번째 파고다 여행을 떠나면 유독 종교시설에 집착한다. 교토에 가면 꼭 료안지에 들러야 한다. 마닐라에서는 주말마다 에르미타교회를 기웃거리다가 동료로부터 잔소리를 들었다(에르미타교회는 악명 높은 우범지대의 한가운데에 있다.) 포르투에서는 성당에 정신이 팔려 옆길로 새기 일쑤였고, 체스키 크룸로프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미사에 갔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성당이란 성당은 다 찾아다녔고, 박타푸르와 우붓에서는 새벽부터 힌두사원에 앉아 있었다. 그래도 중국에서는 안갔었네 생각하다보니, 그럼 그렇지, 예원을 세바퀴 쯤 돌았었다. 종교시설에 집착하는 것은, 신을 모신 곳이야말로 사람들의 맨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서다. 여러 사원에서 본 사람들의 표정은 순수 그 자체였고, 그 절실함이 전해져오는 것 같아 눈시울이 뜨거..
익숙해지는데 필요한 시간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아침 여섯시. 한국에서의 기상시간보다 삼십분 빠르지만, 시차를 생각하면 두시간을 더 잔 셈이었다. 다행히 머리는 가벼웠다. 간밤에 여기저기 늘어놓은 짐들로 방은 좁아보였다. 이건 캡슐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고개를 저으며 샤워를 하러 갔다. 건물만큼 낡은 총 여섯개의 샤워실과 화장실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샤워실 문의 잠금장치는 헛돌았고 뚫린 천장을 통해 화장실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샤워실에서는 내가, 화장실에서는 누군가가 각자 열중하고 있었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어제밤에는 몰랐는데 방의 잠금장치도 허술했다. 미닫이문은 잠궈도 세게 당기면 힘없이 열렸다. 이래서야 짐을 다 들고 다녀야 하잖아, 무거운 장비는 두고 다니려고 독실을 선택한 건데, 한숨을 쉬다 마지막 주의 예..
양곤의 밤 늦은 밤 양곤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카트만두보다는 크고, 마닐라보다는 작은 규모의 국제공항. 사전에 비자를 준비해야 한다던 정보와 달리 공항에서는 도착비자를 허용하고 있었다. 허탈해하면서 짐을 찾았다(급행비자를 받느라 상당한 추가 비용을 냈었다.) 택시 바가지가 심하니 흥정하지 말고 공항택시를 이용하라, 유심은 MPT다, 환전은 공항에서, 혼잣말로 되뇌며 입국장 게이트를 걸어나갔다. 택시?라고 물어보는 살집 좋은 기사를 미소로 물리치고 환전샵으로 걸어갔다. 1달러에 1,520짯. 적당한 환율일까 생각하며 유심스토어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닫았어. 그래? 그럼 택시데스크는? 닫았어. 그렇군. 옆에서 웃고 있는 살집 좋은 기사를 애써 외면하고 공항 안을 헤매봤지만 열린 곳은 없었다. 한숨을 쉬고, 결국 그에게로..
인연의 땅으로 미얀마의 별칭은 ‘인연의 땅’이다. 국민 절대 다수가 불자인 미얀마는, 인연을 소중히 하고 베풀며 살아가는 곳으로 알려져있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인연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미얀마 여행을 처음 생각한 것은 2015년이었다. 이직을 앞둔 시점에 여행으로 머리를 비우고 싶다는 핑계는 꽤 설득력있었고, 잘 알려지지 않은 미얀마는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외국 사이트와 낡은 책자를 뒤적여(국내에는 아직 정보가 많지 않다) 일정을 준비하고 항공권과 숙박까지 어렵사리 예약했는데, 출발 직전 미얀마에 큰 홍수가 났다. 가도 될까, 수만채의 집이 무너지고 수백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곳에 여행자로 발을 디뎌도 될까 고민하다, 결국 환불이 되지 않는 항공권과 숙박을 깨끗이 포기하고 인연이 아닌가보다 생각하고 ..
한밤의 덕적도 사릿발에 떠내려간 배 열흘 만에 찾았다고 날이 새면 덕적도로 배 찾으러 간다고 배 찾았시다 술 한 잔 했시다 신이 났던 아랫집 동생이 등을 두드려 달란다 코스모스 아래 쭈그려 앉아 소라 아빠는 내일 버섯장을, 튼튼한 그늘을, 만든다고 먼저 가고 등을 두드려 주지 않는 내가 야속하다고 어여 가라 잃었던 것 되찾으러 뱃길 세 시간 해발 제로의 길 작게 흔들려도 몸 전체가 흔들리는 배를 타고 아침 일찍 어여 가야 하니 등은 달빛이 두드려 주고 있으니 야속하다 말고 되찾을 것 있는 너는 어여어여 가라 하고 고욤나무 아래 서서 오래 바라다본 달빛 푸른 바다 잃었던 것 되찾는 황홀함 무엇이 있었단 말인가 내겐 무엇이 있을 거란 말인가 찬 들국 향이여 내 마음의 덕적도는 어디에 있는가 - 함민복, 한밤의 덕적도
플리커 사진가들 인스타그램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몇몇 플리커 flickr 사진가들은 여전히 들여다볼만하다. Win Soegondo win_soegondo win_soegondo의 2,054 photos on Flickr! 찾기 www.flickr.com Avik Bangalee aninda kabir [avik] aninda kabir [avik]의 3,457 photos on Flickr! 찾기 www.flickr.com Nicolas Bouvier sparth sparth의 1,592 photos on Flickr! 찾기 www.flickr.com Emmanuel Smague Emmanuel Smague Emmanuel Smague의 956 photos on Flickr! 찾기 www.flickr.com Jonath..
천국의 아이들 난생 처음 떠난 외국이 네팔이었다. 벌써 10여 년 전,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모집한 자원봉사단에 참여하면서다. 목적지는 카트만두 남쪽의 버디켈로, 카스트 계급상 최하위에 속하는 빠하리족의 거주구역이었다. 굿네이버스는 이 지역에 호스텔과 학교를 세웠고, 70여 명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총 13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이곳에서 영어, 미술, 체육 교육을 진행했고, 영어도서관도 세웠다. 어쩌면 삶의 목표까지 바꾸게 된, 강렬했던 일주일의 기록이다. 한국으로부터 6시간의 비행 후,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한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버디켈은 작은 산골마을이었다. 낯설고 조금 어색해서 호스텔 입구에 서있는데, 동네 장난꾸러기 녀석들이 장난을 걸어왔다. 호스텔의 아이들은 고아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편모 슬하의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