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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터에서 네팔 카트만두계곡에서의 어느 오후, 퍼슈퍼티나트(Pashupatinath) 사원에 들렀다. 퍼슈퍼티나트에는 네팔에서 가장 큰 화장터가 있다. 네팔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힌두 풍습에 따라 한 시간 내로 화장터로 옮겨진다. 단 위에 장작을 쌓고 시신을 올린 뒤, 기름과 꽃을 뿌리는 짧은 의식을 뒤로 한 채 순식간에 재로 돌아간다. 인도 바라나시와 차이점이라면, 출입이 비교적 자유롭고 사진 촬영이 허가된다는 점이다. 가까이에서 촬영을 해도 제지하지 않는다. 그런데 좀처럼 셔터를 누를 마음이 들지 않는다. 당연한 얘기겠다. 죽음의 장면은 마주하기 쉽지 않다. 역시나 쉽게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너무도 이질적인 풍경 - 고인을 기리는 행사는 기껏해야 십여 분, 웃으며 보내주는 가족들, 기름과 장작을 흥정하는 장사꾼..
사랑콧의 아침 네팔 포카라 인근의 사랑콧(Sarangkot)은 일출로 알려진 곳이다. 미니 트레킹 또는 차량으로 올라가면, 하늘에 떠 있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사이로 해를 볼 수 있다. 그 풍경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접근이 편리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했다. 포카라에서의 둘째 날, 카트만두에서 알게 돼 동행이 된 분들과 새벽 사랑콧에 올랐다. 전날 약속한 택시기사를 만나 4시경 출발하니, 캄캄한 언덕 위에 도착했을 때 멀리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장면을 실제로 보는데, 머리속으로 상상하던 규모가 아니라, 말문이 막혀버렸다. 셔터를 누르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제프 버클리가 들려왔다. 근처에 앉아 있던 누군가의 흥얼거림이었을 수도, 가게에서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였을 수도 ..
사롱을 팔던 아주머니 발리 스미냑 해변에서 화려한 색과 문양으로 장식된 사롱(Sarong)을 파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곁에 다가와서는 이거 필요하지 않아? 한개 원헌드레드앤핍프티야. 두개 사면 투헌드레드앤핍프티야. 흥정을 건다. 해변에 올 때 비치타월을 가져왔기 때문에 살 생각이 없었다. 위니드나띵 벗 땡스포애스킹. 고개를 흔드니, 아주머니는 미소지으며 오케이.손을 흔드신다. 손을 흔들고 걷다보니, 그래도 하나쯤은 좋지 않을까 싶어 되돌아갔다. 맘, 위씽크위니드원. 반가운 표정의 아주머니는 다시 흥정을 건다. 기왕이면 두개 사. 저기 가면 좀 더 다양한 색상이 있어. 행상이 있는 곳으로 따라가보니 여러 가지를 보여주시는데, 아주머니의 어깨에 걸쳐 있던, 처음의 것이 가장 맘에 들었다. 이걸로 할게요. 아주머니는 기어이 두개를..
첫번째 상고대
Strum's 110 Jupiter St. Bel-Air Makati City Tel. 895-4636, 890-1054 Open from 5:30pm to 2:30pm, Monday to Sunday Strum's은 마닐라의 '진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클럽이다. 늦은밤이면, 가게 앞에서 꽃 파는 아주머니를 마주치게 될거다. 장미 한 송이를 건네며, 유어 파인 레이디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어, 라고 말할거다.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미리 준비했다잖아? 세 번 쯤 마주치면 꽃 대신 미소를 건네며 "오늘은 늦었네?"라고 말을 걸어올거다. 그럼, 오늘은 어떤 하루였는지, 그 날의 일들을 시시콜콜하게 얘기하게 될거다. 아주머니 옆에는 나무 상자를 끈으로 목에 걸고 가치담배를 파는 아저씨가 있을 거다. 담배를 고르면 불을 붙..
일상이라는 상처 일상은 지루하다. 그래서, 이벤트 없는 일상을 일일이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 '패터슨(PATERSON)'을 보고난 후 장면들이 하나하나 떠오르지 않는 것도, 어느 순간 이게 영화 속 어느 날이었는지 지난달 나의 하루였는지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도, 그게 주인공이 벤치에 앉아서 바라보던 풍경이었는지 어제 내가 본 차창 밖 풍경이었는지 알 수 없어져버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영화는 일주일을 - 아침으로부터 밤까지 - 그저 보여주는 식이다. 월요일, 화요일, ... 시간은 흐르고 카메라는 기계적으로 정면, 혹은 측면에서 주인공을 관조한다. 주인공은 매일 침대에서 눈을 뜨고, 시간을 확인하고, 와이프에게 애정표현을 하(거나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시리얼을 먹고, 출근하고, 차에..
평양냉면 8년 전, 네팔 카트만두의 북한 음식점 – 옥류관에 갔었다. 실제 북한 사람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고, 북한 음식은 생소한 터라 긴장도 했었는데, 작은 무대도 있고 시간대별로 공연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 동행한 분들이 이것저것 주문해서 맛을 보게 되었는데, 평양냉면이라고 가져다 준 걸 보니 모양은 비슷한데 어딘가 좀 낯설었다. 접대원 동무가 먹기 좋게 해준다며 냉면을 손질해주는데, 면을 젓가락으로 높이 들어 어슷자르고 사이사이에 식초를 듬뿍 쳐주는 거였다. 우리가 흔히 냉면을 먹는 방식과는 달랐다. 한젓가락 입에 넣어보니 맛 또한 제법 달랐다. 면은 오히려 미끌거렸고, 육수는 우리의 평양냉면보다 더 슴슴했다. 식초를 잔뜩 넣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맹물에 면을 담근 수준이었다. (참고로, 내 입맛은 을지면옥,..
Perfect! 영원한 항구 포르투(Porto), 그곳의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면 꼭 되돌아오는 말이 있었다. “Perfect!” 그리고는 그 메뉴에 걸맞는 사이드 메뉴나 음료를 권하곤 했는데, 가령 팬케익을 시키면 “올리브 줄까?”, 생선요리를 주문하면 “화이트 와인이 필요하겠네?”, 맥주를 달라고 하면 “그럼 칩스?”라고 물어보는 식이었다. 이건 사실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칭찬을 받는 느낌, 동의를 얻은 느낌, 환영받는 느낌, 도움을 주는 느낌이 더해지면서 결과적으로 웨이터가 친구나 오랜 지인처럼 느껴지곤 했었다. 게다가 그렇게 권해준 것과 내 주문의 상생도 꽤 좋았다. (그 올리브 절임은 잊을 수가 없다.) 한국에도 그런 식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주문하면 “네.”가 아니라, “그렇지!” “역시!” “맞..